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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희연이 누군가 내게가장 가까운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주저 없이 희연이라고 말한다.내 삶에 스며든 빛 같았던 친구.기댈 곳이 없을 때,내 이야기를 가장 조용히, 가장 깊이 들어주던 사람.웃음소리는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마음속까지 울리곤 했다.그런 그녀가5년 전 전이성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한동안은 림프와 폐로 전이됐음에도 잘 버텨주는 듯 보였다.하지만 수술 이후, 1년 7개월.희연인 칼끝에서 피어나는 고통 속으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어릴 적 소아마비로제 두 발로는 한 번도 서보지 못했던 그녀였지만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나는 늘그녀에게 위로를 받았다.힘들 때면 퇴근길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기도 했고,서로의 고요한 틈에 웃음 한 조각을 나누기도 했다.그런 그녀가 떠났다.3월 초의 며칠은정확히.. 2025. 3. 26.
결혼 반지는 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울까?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결혼 반지'다. 그중에서도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운 반지는, 사랑과 약속, 신뢰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왜 하필 '왼손'이고, 왜 '네 번째 손가락'일까? 이 오랜 풍습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신화와 의학, 종교와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힌 흥미로운 문화사가 펼쳐진다.고대 이집트: 반지의 기원결혼 반지 자체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원형의 반지를 '영원성(eternity)'의 상징으로 여겼고, 줄기풀이나 가는 금속으로 만든 반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반지는 시간의 흐름과 영원의 순환, 끝없는 사랑을 의미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반지를 왼손의 특정 손가락에 끼우는 것이 사랑의 흐름을 연결하는 행위라 여겼다. 고대 로.. 2025. 3. 26.
우표: 작은 종이 위에 담긴 제국과 민중의 역사 우리는 이제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손글씨보다 더 빠르고 편한 도구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 사람들은 편지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안부를 전하며, 오랜 소식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 모든 ‘편지’에는 조용히 붙어 있던 작은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우표’라는 이름의 이 조각은 단지 요금을 의미하는 표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국가의 상징, 개인의 추억과 제국의 야망을 고스란히 품은 조용한 증인이었다.우표의 발명, ‘불편함’에서 시작되다1840년, 산업혁명으로 분주했던 영국. 편지 제도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편지 요금을 받는 사람이 부담해야 했고, 요금 체계가 복잡하여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나선 인물이 바로 로랜드 힐(Sir Ro.. 2025. 3. 26.
‘팬(Pan)’의 어원과 신화의 그림자 우리는 일상 속에서 ‘팬(pan)’이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만난다.팬데믹(pandemic), 팬아시아(pan-Asia), 팬케이크(pancake),심지어 팬오케스트라(pan-orchestra) 같은 표현까지도.‘팬’이 붙으면 왠지 범위가 넓어지고, 모두를 아우르는 느낌이 든다.하지만 이 단어의 뿌리를 하나하나 들춰 보면, 단순히 ‘전체’를 의미하는 접두사 이상의 무언가가 보인다.그 바탕엔 고대 그리스의 자연신 ‘판(Pan)’의 흔적이 숨어 있다.어원의 출발점 – 고대 그리스어 ‘πᾶν (pan)’‘팬(pan-)’은 고대 그리스어 ‘πᾶν (pan)’, 즉 ‘모든 것(all)’에서 유래했다.이 단어는 ‘pas’(모든)의 중성형으로, 라틴어로는 ‘omnis’, 영어로는 ‘all’에 해당한다.그리스어 ‘.. 2025. 3. 26.
피레네산맥이 보인다는 도시, 포(Pau)와 루르드 맑은 날이면 멀리 피레네산맥이 보인다는 도시, 포(Pau).운 좋게도 하늘이 맑았다.말로만 듣던 피레네산맥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그런데 풍경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다.점심 예약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결국 도시를 한 바퀴 휘익 돌고는 그대로 지나쳤다.참 예쁜 도시였는데, 정작 눈에 담아야 할 건 거의 담지 못했다.   식당은 따로 예약해 두었던 타르브(Tarbes)에 있었다.이름도 기억에 남는 곳, L’empreinte라는 레스토랑.음식이 한 접시씩 차례로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무슨 설명을 열심히 해준다.그런데 솔직히… 전혀 못 알아들었다.그럼에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게, 어쨌든 다 맛있었다.특히 와인.프랑스에선 와인 병 크기도 다양하다.반 병도 있고, 3분의 2 병도 있다.애초에 병이 그렇.. 2025. 3. 26.
대서양의 바람을 따라, 비아리츠에서의 하루 비아리츠로 가는 길, 중간에 상장드뤼즈(Saint-Jean-de-Luz)라는 항구 마을에 잠시 들렀다.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지나가다 바다가 눈에 들어와 그냥 걸음을 멈췄다.잔잔한 물결 위에 배들이 조용히 정박해 있었고, 항구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하얀 벽과 붉은 지붕으로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멀리 보이는 둥근 종탑 하나가 이 마을의 시간을 지키는 듯 서 있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도 느렸고, 바람도 그 속도에 맞춰 불고 있었다.크게 무엇을 하지 않았지만,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바다는 여느 때처럼 무심했고, 그 무심함이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했다.잠깐 머문 이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상장드뤼즈(Saint-Jean-de-Luz)라는 항구 마을  그리고 다시 길을 달.. 2025. 3. 26.
염량세태(炎凉世態): 따뜻할 때만 가까운 사람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태도는 날씨처럼 변덕스러워졌다. 햇살이 따스하면 웃으며 다가오지만, 구름이 끼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금세 등을 돌린다. 세상살이가 늘 그러한 줄 알면서도, 사람은 그 차가움에 한 번씩 마음이 시려진다. 이런 세상의 모습은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고전 속에는 이런 세태를 꿰뚫어 본 말이 있다. 바로 염량세태(炎凉世態). 불처럼 뜨거울 때는 붙지만, 식어버리면 차갑게 돌아서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다. 염량세태의 어원과 뜻‘염(炎)’은 불처럼 뜨거운 것을 뜻하고, ‘량(凉)’은 얼음처럼 차가운 상태를 의미한다. ‘세태(世態)’는 세상의 이치나 세상 사람들의 태도, 풍속을 뜻하는 말이니, 염량세태란 결국 “세상의 인심이 권세나 이익에 따라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는 의미가.. 2025. 3. 25.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고사성어 ‘토사구팽’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짧은 말에는 인간 관계의 본질과 권력의 비정함이 서늘하게 담겨 있다.이 말의 유래는 중국 전국시대, 한나라 초(楚漢戰爭)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유래 : 한신과 유방, 그리고 냉혹한 권력의 그림자이 말은 한나라의 초대 황제 유방(劉邦)과 명장 한신(韓信)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전략가 한신의 탁월한 지략에 크게 의지했다.한신은 항우의 군대를 각개격파하며 승리를 거듭했고,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다.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한신이 유방 곁에서 오랫동안 총애를 받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천하가 유방의 손에 들어오자, 상황은.. 2025. 3. 25.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 죽음과 봄의 신화 들판을 스치듯 찾아오는 이름봄이 찾아올 때마다 들판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한 여신의 이름을 떠올린다. 페르세포네.  꽃이 피고, 새싹이 돋고, 생명이 다시 깨어나는 시기. 그녀는 봄을 데려오는 존재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이름 속에는 단지 계절의 여신만이 아닌, 더 깊고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순수한 소녀의 탄생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하늘의 신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코레(Kore)'라 불리며 소녀의 순수를 상징하던 그녀는 들판에서 꽃을 꺾으며 지상의 빛과 생명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저승의 신 하데스가 그녀를 지켜보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매혹되지만 다가서지 않고, 제우스의 승낙을 받은 후 지하의 균열을 통해 솟아올라 그녀를 납치했다. 검은 말이 끄는 .. 2025. 3. 24.
무수리에서 영조의 어머니로 – 숙빈 최씨의 일대기 우리가 알던 무수리, 그 끝은 왕의 어머니였다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신분 상승의 주인공을 꼽는다면,단연코 숙빈 최씨(淑嬪 崔氏)가 그 중심에 있다.궁중의 하급 노동자 계층인 무수리에서 시작해, 훗날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어머니가 된 인물.그녀의 삶은 단지 우연한 운명의 반전이 아니라,절제와 성실, 검소함으로 쌓아올린 조선적 미덕의 결정체였다.숙빈 최씨는 권세를 탐하지 않았고,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낮추었으며,자식의 성공조차 조용히 지켜보는 어머니로 남았다.그녀는 ‘무수리 출신 국모’라는 파격적인 신분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거나꾸미지 않았다.무수리 최씨, 어떻게 입궁했을까?숙빈 최씨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670년대 전후로.. 2025. 3. 24.
우리가 몰랐던 궁녀의 진짜 삶_궁녀는 평생 궁에만 있었을까? 드라마 속 궁녀는 대개 조용히 뒷걸음치고, 절을 하고, 목소리를 죽이는 인물이다.궁중의 질서를 지키는 조연, 왕과 왕비의 그림자 같은 존재.하지만 현실의 궁녀는 훨씬 더 복잡하고, 더 인간적이며, 때로는 조선 왕조의 무게를 지탱한 사람들이었다.그리고 그들의 삶은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나가지 못하는’ 운명도 아니었다.궁녀는 어떻게 뽑혔을까?조선의 궁녀는 자원봉사자도, 전업 하녀도 아니었다.‘궁녀’는 국가가 선발하고, 훈련시키고, 배치한 국가 여성 관료 조직의 일원이자, 왕실 운영의 실무자였다.대체로 8세~13세 사이의 양민 또는 천민 출신 소녀들이 선발되어 입궁했으며,이들은 처음에는 ‘궁녀’가 아닌 ‘궁인’이라는 넓은 범주의 신분으로, 내명부 하위 계층에 배속되었다.입궁 후 일정 기간 동안 예절, 용어,.. 2025. 3. 24.
우물 대신 등장했던 펌프, 그리고 마을 공터의 수도 물을 길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손만 뻗으면 정수기에서 찬물이 콸콸 나오는 지금, 우리는 물의 고마움을 잊기 쉽다.하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물은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그 시절, 마을마다 물을 둘러싼 풍경은 다정했고, 때로는 고단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잇는 고리였다.우물에서 시작된 물의 역사한국 농촌과 골목의 가장 오래된 물 공급 방식은 우물이었다.땅을 깊게 파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이 방식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고,‘마을의 중심에는 항상 우물이 있다’는 말처럼,우물은 단순한 물 공급처가 아니라 소통과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했다.여인들은 그곳에 모여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두레박 줄을 당기며 듣던 물소리, 우물가에 앉아 나누던 수다,그리고 그 곁에서 자란 아이들.. 2025. 3. 24.
십자가의 유래 – 죽음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십자가는 너무도 익숙한 상징이다.거리의 교회 첨탑 위에서, 목에 걸린 펜던트에서, 병원 로고와 응급 키트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도형을 마주한다.그러나 한 걸음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이 상징은 너무도 기이한 기원을 지니고 있다.그 시작은 ‘사형틀’이었다.  ‘가장 잔혹한 죽음의 상징’에서 출발하다십자가는 고대 로마 시대에 사용된 가장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형벌 방식, 즉 십자가형(crucifixion)에서 비롯되었다.팔을 벌리고 가슴을 노출한 채로 나무에 못 박혀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 처형은단순히 생명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공포와 굴욕을 각인시키기 위한 공개 처벌의 도구였다. 예수가 처형된 방식이 바로 이 십자가형이었고,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구세주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의 이미지.. 2025. 3. 24.
모자를 벗는 인사, 그 오래된 몸짓의 기원 우리는 때때로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경건한 자리에서 누군가 조용히 모자를 벗는다.국기에 대한 경례 시간,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국가, 혹은 장례식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벗는 장면.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예절일까? 아니면 더 깊은 뿌리를 가진 문화적 표현일까?사실 ‘모자를 벗는 인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그리고 상징이 풍부한 행동이다.그 유래는 중세 유럽 기사들의 갑옷과 투구로 거슬러 올라간다.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신뢰의 제스처’중세 시대, 기사는 투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다녔다.이러한 복장은 전투 시에는 유리했지만, 타인과의 만남에서 ‘적대감’ 또는 ‘정체의 은폐’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그래서 기사들이 자신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투구를 벗거나 들어 올렸다.. 2025. 3. 24.
유로(Euro) – 신화에서 통합 유럽까지 어느 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동전 하나에 새겨진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EURO’ – 단순히 유럽연합의 통화를 의미하는 줄로만 알았던 이 짧은 단어는,사실 놀라울 만큼 긴 역사를 품고 있다.그 중심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한 여인이자, 대륙의 이름이 된 ‘에우로페(Europa)’가 있다.그리스 신화에서 건너온 이름_에우로페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시작된다.에우로페는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로,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신들의 세계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다.그 모습을 본 제우스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하얀 황소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 앞에 나타난다.에우로페는 경계 없이 그 황소에 다가가 등을 쓰다듬고, 이윽고 등에 올라탄다.그 순간 제우스는 그녀를 태우고 바다를 건너 크레타 섬으로 향하고,결국 그.. 2025.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