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역사적 사건과 인물 분석3 루비콘 강을 건넌 시저 – 한 정치가가 바꾼 로마의 운명 로마의 한 정치가가 작은 강을 건너면서 역사는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그의 이름은 시저,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황제의 길’로 향한 결단의 기록이다.---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시작된 야망기원전 100년, 로마의 귀족 가문 율리우스 씨족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훗날 '시저'로 불릴 이 인물은 한때 몰락했던 귀족 가문의 후예로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일찍부터 야망을 품었다. 그는 정치적 동맹과 정략결혼을 통해 로마의 관직 코스를 밟아가며 집정관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의 권력 기반에는 세 사람의 연합, 제1차 삼두정치(트리움비라투스)가 있었다. 시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각자의 힘을 결합해 원로원과 보수 귀족들을 압박했던 그들의 동맹은, 로마 정.. 2025. 5. 16. 워털루 전투와 나폴레옹 – 황제의 마지막 전장 돌아온 황제, 끝나지 않은 전쟁1815년 3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엘바 섬을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10개월 전 그는 연합군에 의해 패배한 뒤 엘바 섬에 유배되었고, 프랑스에는 왕정이 복원됐다. 하지만 루이 18세의 정권은 민심을 얻지 못했고, 왕정 복고에 대한 반감은 퍼져 있었다.엘바에서 그의 귀환은 전광석화처럼 전개되었다. 상륙 후 만난 병사들은 그를 체포하기는커녕 지지했고, 파리는 열광하며 다시 황제를 맞이했다. 이른바 백일천하가 시작된 것이다.하지만 유럽 열강은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곧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조직하고, 프랑스와의 전면전을 준비했다. 전장은 벨기에 남부의 워털루. 여기서 유럽의 미래가 판가름 나게 된다. 나폴레옹의 .. 2025. 5. 13. 프랑스 혁명과 로베스피에르의 딜레마 도덕이 칼을 들 때, 혁명은 어디로 가는가?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공포와 의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스러져갔다. 그 중심에 있던 로베스피에르. 그는 도덕을 믿었고, 그 믿음은 피를 불렀다. 오늘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1789년, 무너진 바스티유 감옥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민중에 의해 함락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그 감옥은 실제로는 몇 명의 죄수만 수감된 곳이었지만, 왕권과 전제정치의 상징이었다.이날은 지금도 프랑스의 국경일(La Fête nationale)로 기념된다.하지만 혁명의 불씨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구제도(Ancien Régime) : 귀족과 성직자가 세금에서 면제되고, 평민에게만 부담이 전가된.. 2025. 5.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