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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양 한 스푼/옛말 속 지혜 한 줌_고사성어

군계일학(群鷄一鶴) – 평범함 속에서 단연 빛나는 한 사람

by 리안과의 만남 2025. 5. 12.

우리 주변엔 그런 사람이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조용히 다른 시선을 유지하는 사람.
소란스러운 무리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
그 존재는 때로 말없이도 드러난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옛사람의 말로 이렇게 불렀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수많은 닭들 사이에 단 한 마리의 학이 서 있는 듯한 풍경.

 


고사 속 이야기

이 말은 진나라 회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왕은 초나라에 사신을 보냈고, 그 사신은 그곳의 인물 중 하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치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그가 말한 이는 단지 외모나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지혜와 품격, 그리고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까지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한 마리 학은 결코 닭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그 고요한 선과 눈빛, 그리고 무리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세는,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한다.


지금 이 시대의 군계일학

오늘날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말투, 비슷한 루틴.
무리의 리듬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이 점점 더 당연해지는 요즘,
가끔은 너무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자기만의 보폭으로 걷고,
누군가는 불필요한 소음을 걷어내고 본질에 다가간다.

그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지만, 시대를 이끈다.
그들은 말이 많지 않지만, 누구보다 오래 기억된다.


내가 존경하는 군계일학의 얼굴들

영화 《쇼생크 탈출》속 앤디 듀프레인

《쇼생크 탈출》 속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
잔혹한 교도소 안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누구보다 조용한 그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도서관을 만들고, 재소자에게 글을 가르친다.
그는 눈에 띄기 위해 움직이지 않지만 그 움직임은 결국 모두를 바꾼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 존재. 바로 군계일학이다.

 

 

유일한 박사 – 이익보다 가치를 남긴 기업가

유한양행 창립자. 기업인. 독립운동가. 그리고 교육자.
하지만 유일한 박사의 삶을 단 하나의 타이틀로 묶기란 쉽지 않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그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사회에 환원했다.
직원들과 주식을 나누고, 유한재단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기업의 존재 이유는 국민에게 유익을 주는 데 있다"고 믿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그는 조용히 다른 말을 꺼냈다.
남기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철학이다.

그가 남긴 것은 높은 매출이 아니라,
‘기업도 교육도 곧 나눔이다’라는 정신의 유산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 자본주의 한가운데서, 자본보다 사람을 먼저 본 학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도 한국 기업 정신의 한 편엔 ‘공공성과 품격’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신영복 교수 – 말보다 조용한 울림

신영복 교수. 사상가. 필자. 그리고 철학자.
그의 이름 앞에는 조용한 단어들이 따라다닌다.
크게 외치지 않았고, 빠르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한 문장, 한 글자에 담은 뜻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처음처럼.”
그가 감옥에서 써내려간 이 세 글자는 대한민국 가장 흔한 소주병의 라벨에 붙어 있지만,
그 말의 진심은 언제나 철학의 언어였다.

20년 넘는 수형생활 속에서도 그는 사유하고, 기록하고, 되묻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던졌고, 그 대답을 삶으로 써냈다.

신영복 교수는 빠르게 판단하고, 손쉽게 말하는 시대 속에서
생각의 밀도와 품격을 지켜낸 인물이었다.
그는 단지 군계일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보여준 ‘학의 윤리’였다.

 


군계일학을 품고 산다는 것

군계일학은 '우월함'을 뽐내는 말이 아니다.
그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의 절제된 품격이다.
말이 많지 않아도 중심을 지키는 사람, 기회보다 가치를 먼저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시대의 진짜 군계일학이다.


당신도 누군가의 학일 수 있다

군계일학은 먼 옛날 이야기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늘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그 사람’을 발견한다.
혹은,
우리가 바로 누군가의 시선 속에 담긴 학 한 마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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