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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양 한 스푼/옛말 속 지혜 한 줌_고사성어

염량세태(炎凉世態): 따뜻할 때만 가까운 사람들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5.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태도는 날씨처럼 변덕스러워졌다.

햇살이 따스하면 웃으며 다가오지만, 구름이 끼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금세 등을 돌린다.

세상살이가 늘 그러한 줄 알면서도, 사람은 그 차가움에 한 번씩 마음이 시려진다.

 

이런 세상의 모습은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고전 속에는 이런 세태를 꿰뚫어 본 말이 있다. 바로 염량세태(炎凉世態).

불처럼 뜨거울 때는 붙지만, 식어버리면 차갑게 돌아서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다.

 


염량세태의 어원과 뜻

‘염(炎)’은 불처럼 뜨거운 것을 뜻하고, ‘량(凉)’은 얼음처럼 차가운 상태를 의미한다.

‘세태(世態)’는 세상의 이치나 세상 사람들의 태도, 풍속을 뜻하는 말이니, 염량세태란 결국

“세상의 인심이 권세나 이익에 따라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 말은 중국 명나라 시절 풍몽룡(馮夢龍)의 소설집 『경세통언(警世通言)』에 자주 등장한다.

당시 명말 사회는 부패와 환관 정치, 문벌 귀족의 횡포가 극심했던 시기로, 사람들의 태도 역시 권세를 좇는 데에 민감했다.

풍몽룡은 『경세통언』, 『성세항언』, 『형세현언』의 3부작을 통해 그런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염량세태는 그중에서도 시대를 초월한 인간 군상의 이면을 담은 핵심 개념이었다.

비슷한 의미로 쓰인 고사성어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지만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린다는 뜻이다.

염량세태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감정의 온도 변화로 묘사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고전 속 염량세태의 대표 사례

고사성어는 대부분 고대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 생겨난다.

염량세태 역시 그런 인물들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한신(韓信)의 이야기

한나라 고조 유방의 휘하에 있던 명장 한신은, 가난한 시절에는 동네 아이들한테조차 조롱당하던 인물이었다.

목욕탕에서 일하던 하급 관리조차 그를 깔보며, 밥을 얻어먹기 위해 갔던 어떤 여인은 "불쌍해서 주는 것뿐"이라며

시혜를 베풀 듯 음식을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유방 밑에서 전쟁을 이길 때마다 큰 공을 세우며 일약 장군이 되었고, 그를 무시하던 사람들은 모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었다.

하지만 한신은 이런 태도에 환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경계했고, 결국 조정 내 시기와 모함 속에서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생애 자체가, 염량세태를 겪는 사람의 심정과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신이 무시당하던 시절

 

 

조조(曹操)의 경우

조조 역시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심과 경계를 받던 인물이었다.

시절의 그는 야심가, 모략가로 불리며 경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삼국의 중심 권력자가 된 이후, 과거 그를 폄하하던 사람들까지 그 앞에 줄을 섰다.

심지어 조조를 배척하던 이조차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조조는 이런 세상의 이치를 잘 알았기에, “사람은 늘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있을 때 나타난다”는 식의

냉철한 말을 자주 했다. 그는 사람들의 충성보다, 변하지 않는 동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오히려 거리를 두는

관계를 선호했다.

이처럼 염량세태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이익의 작용 방식을 꿰뚫은 현실적 통찰이었다.

조조가 젊은 시절 권력을 얻기 전 냉대 받는 모습

 

권세가 있을 때와 몰락한 이후의 극명한 대비

 


지금 우리 사회의 염량세태

고전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염량세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SNS에는 칭찬과 좋아요를 아낌없이 누르지만, 그 사람이 위기를 맞이하거나 사회적 위치가

낮아지면, 연락 한 통 없는 냉정함으로 돌아선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일 때는 아부와 관심을 받지만, 퇴직한 다음 날부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척 관계에서도, 돈이나 권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대접은 천지 차이다.

 

정치인, 연예인, 인플루언서, CEO... 현대 사회의 염량세태는 훨씬 빠르고 집단적이다.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칭송을 보냈다가, 실수 한 번에 등을 돌리고 외면한다.

그 안에는 공감보다 여론, 인간보다 정보, 진심보다 유행이 우선시되는 시대의 특징이 자리한다.

 

현대 사회에 나타나는 염량세태

 


염량세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우리는 때때로 이 세상의 냉정함에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그 차가움 속에서 누가 끝까지 남아 있는가를 보는 일이다.

권세 있을 때 곁을 맴도는 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권세가 사라졌을 때에도 변치 않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염량세태는 세상을 탓하는 말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진심을 알아보는 거울이자,

내가 누구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되묻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장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는 일.

그 작지만 깊은 마음이 관계를 구별하고, 신뢰를 만들며, 세태를 견디게 한다.

 

세상은 언제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며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계산 너머의 관계를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염량세태라는 말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뜨거울 때만 가까운 사람인가, 식었을 때에도 곁에 남아주는 사람인가?”

진심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세상은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기를 바란다.

그 마음 하나가, 이 염량한 세태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