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옆 공원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지도에 이름만 적혀 있던 마을, Steveston.
그 마을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그저 ‘항구 마을’이라는 정보 하나. 그리고 바다가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
도착한 건 늦은 오후였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파랗게 펼쳐져 있다.
부두엔 생선을 다 팔고 철수하는 배들도 있었고
아직 남은 것들을 얼음 위에 놓고 마지막 호객을 하는 상인도 있었다.
“Wild caught!”
그 말에서 자랑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붉은 천막 아래 놓인 생선들 위로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부듯가의 작은 레스토랑에선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왔고
테라스에는 여행자들이 앉아 누군가는 로제 와인을 마시고
누군가는 새우를 손으로 까고 있었다.
잔잔한 대화, 천천히 움직이는 손, 그리고 한참 동안 비워진 접시.
이곳의 시간은 느렸고,
그 느림이 이 마을을 아름답게 했다.
부두 끝으로 더 걸어가다 보니 오래된 붉은 테두리를 한 지붕 건물이 나타났다.
Gulf of Georgia Cannery.
과거 이 마을에서 정어리와 연어를 가공하던 통조림 공장.
지금은 박물관으로 남아 한때 이 부두를 채웠던 노동과 어업의 시간을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마을 가장자리, 그늘 아래 있는 파란 벤치에 시선이 멈췄다.
벤치에는 푸른색 배경 위에 인물 그림이 있었고
그 위로 분홍빛 꽃잎이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다.
누구도 앉아 있지 않은 그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그 풍경이, 그 고요함이, 그 순간의 바람이 너무 완벽해서 어떤 움직임도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돌아 나오는 길,
골목 사이로 클래식 오픈카 한 대가 조용히 지나갔다.
붉은 차체, 천천히 굴러가는 바퀴, 그리고 그 속도마저도 이 마을의 리듬과 딱 맞았다.
그 차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느린 것도 나쁘지 않다’고.
Steveston.
누군가에겐 고된 일터였을 이 마을이 지금 내겐 너무 따뜻한 정박지였다.
떠날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그냥 이대로 있어도 되는 공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왔는지, 어디로 갈 건지.
그래서 더 편했다. 그래서 더 오래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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