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옆의 작은 공원 – 이제 나를 살펴볼 시간이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첫날, 나는 비행기 소음을 안고 공항 옆 공원으로 향했다.
‘래리 버그 플라이트 패스 파크’.
활주로 끝자락, 지구본이 놓인 그 공원에서 나는 한참을 하늘만 올려다봤다.
커다란 제트기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나는 도착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마음도 함께 데려온 사람이었다.
이 공원은 단순히 공항 근처의 쉼터가 아니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비행 경로가 새겨진 지구본,
종이비행기 모양의 벤치들,
그리고 땅을 떠나는 사람들을 축복하듯 머리 위를 스치는 날개들.
낯선 땅에 발을 딛고서 처음 맞이한 공간은,
왠지 모르게 ‘여행이 시작됐다’는 말 대신
“이제 나를 살펴볼 시간이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두지 않았기에,
오히려 지금 여기가 목적지 같기도 했다.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공원 전체가 잠깐 흔들리는 듯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누군가 이륙하면, 또 누군가 착륙하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는 그 순환 속에서
나는 지금, 떠나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아닌
잠시 멈춰 선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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