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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다시 읽기/고대 그리스 역사

전쟁이 만든 공동체 – 마라톤에서 살라미스까지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1.

 

고대 그리스의 정체성과 민주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단지 철학과 제도로만 설명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시민의식을 자극하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고대 그리스에 있어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신화, 정치, 종교, 예술이 한데 모여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킨 시대의 전환점이었다.

 

마라톤 전투

기원전 490년,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대군과 마주했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귀족이 아닌 ‘시민 병사’들이 앞장섰다. 방패와 창을 들고 달려간 이들은 아테네 민주정의 상징이 되었다.

 

페르시아군보다 숫자가 적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훈련과 결속력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는 단지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민주정과 공동체가 전제왕정을 이길 수 있다는 상징으로 남았다. 마라톤을 뛰어 승전보를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의 전설은 오늘날 마라톤 경기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마라톤 전투는 ‘참여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한 계기이기도 하다. 평민이 병사로서 국가를 방어한 만큼, 정치에도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졌고, 이는 아테네 민주정의 토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다시금 페르시아 제국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다. 육지에서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에서 희생으로 시간을 벌었고, 바다에서는 아테네의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가 결단을 내렸다.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 해군의 승리였다. 배를 젓는 노꾼 대부분은 평민 출신의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병력이 아니라, 민주정의 실질적 주체였다. 아테네는 이 승리로 해상 패권을 장악했고, 이후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전투는 단지 해전의 승리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계기였다. 전투를 통해 시민들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정치의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전쟁은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새롭게 규정한 정치적 교육장이었다.

 

살라미스 해전

 

디오니소스 극장

전쟁 이후, 아테네는 단지 도시가 아니라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민 교육과 문화의 꽃이 피었고, 그 중심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었다.

 

이 극장에서는 단지 연극을 본 것이 아니라, 전쟁, 신, 인간, 운명에 대해 성찰했다.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은 승자의 시선이 아니라, 패자의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었다. 신화 속 영웅은 곧 인간 자신이었고, 무대는 공동체의 거울이었다.

 

연극은 시민에게 정체성과 윤리를 교육하는 공적 도구였다. 각 비극은 신과 인간, 정의와 책임,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균형을 탐구했으며, 극장의 무대는 현실 정치와 윤리적 판단의 실험실이었다.

 

디오니소스 극장

 

제도가 된 신화

이 시기 신화는 더 이상 이야기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신들의 이름은 법정과 축제, 제례와 정치에 들어왔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도시 자체의 수호신이었고, 제우스는 재판의 상징이었다.

 

판아테나이아 대제전에서는 온 시민이 퍼레이드에 참여해 신화적 조상을 기렸고, 법정에서는 신화에 기반한 판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에우리피데스의 『에우메니데스』는 복수에서 정의로, 개인 감정에서 공동체의 이성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화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법과 질서, 정체성의 토대가 되었다. 시민은 신화 속 인물들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했고, 공동체는 신화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 나갔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공동체 의식과 신화의 제도화

‘헬라인’이라는 정체성의 형성

페르시아 전쟁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는 계기였다. 각기 다른 폴리스였던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토스 등이 힘을 합쳐 외적에 맞서 싸우면서 ‘헬라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이후 올림픽 경기나 델포이 제전, 종교 축제는 그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신화 속 영웅은 단지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모델이 되었고, 공동체는 신화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게 되었다.

 

전쟁은 문명의 위기였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탄생이었다. 고대 그리스는 전쟁 속에서 민주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확인했고, 그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