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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다시 읽기/고대 그리스 역사

폐허 위의 질문들 – 전쟁, 신, 그리고 철학의 탄생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1.

 

고대 그리스, 찬란한 문명이 스스로의 균열로 무너질 때,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형제는 서로에게 칼을 들었는가? 왜 신들은 침묵했는가? 그리고 인간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장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역사적 파국과,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사유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동맹에서 적으로 :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갈라선 길

한때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함께 싸웠던 도시국가들이 다시 칼끝을 겨눈 건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통해 막강한 해군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름은 점점 지배와 강압으로 변질되었고, 아테네의 영향력은 다른 도시국가들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전통적인 군사국가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나섰다.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이 전쟁은 27년에 걸쳐 지속된 장기전으로, 수많은 도시국가들을 황폐화시켰다.

 

아테네는 해상에서 강했지만, 육지에서는 스파르타에 밀렸고, 특히 시라쿠사 원정 실패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전쟁 막바지에는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해군력을 보강했고, 마침내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항복하게 된다. 그러나 스파르타 역시 곧 내부 혼란에 빠지며, 결국 두 도시 모두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전쟁은 단지 힘의 충돌이 아니었다. 자유와 민주정, 공동체 정신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이 무너지는 과정이었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그리스 세계를 짓눌렀다.

 

전쟁의 폐허 속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들의 침묵 : 붕괴된 믿음의 질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신들의 침묵을 체감했다. 예전 같으면 전쟁의 앞뒤에 제사가 열리고, 신탁의 말에 따라 움직였겠지만, 이제는 신전도 무너지고 제례도 의미를 잃어갔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약탈과 무관심 속에 빛을 잃었고, 스파르타의 종교적 의식들도 점점 형식적인 틀에 갇혀갔다. 무엇보다 사람들 스스로가 더 이상 신들로부터 위로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왜 신들은 이런 고통을 허락하는가?’ – 전염병과 기근, 전쟁과 배신 앞에서 신화는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믿음은 흔들렸고, 신화는 더 이상 삶의 안내자가 아닌 과거의 기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단지 종교적 침체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이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선택’을 중심에 놓고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너진 신전 안에 쓰러진 제우스와 아테나의 조각상

 

철학자들이 등장하다 : 신화를 넘어선 질문들

전쟁과 혼란의 시대는 새로운 사유를 불러왔다. 신들이 침묵한 자리에, 인간의 질문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왜 전쟁은 반복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가장 먼저 등장한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며, 인간이 만든 규범과 법이 절대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때로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에 맞선 인물이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시장과 광장을 돌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있으며, 대화를 통해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 정의, 영혼에 대해 질문하며 새로운 철학의 문을 열었다.

 

그의 죽음 이후, 제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을 통해 신화 너머의 진리를 탐구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며 인간과 세계를 이성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렇게 그리스 세계는 신화에서 철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붕괴와 상실의 시대에, 인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질문하고, 신이 아닌 이성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아고라 광장에서 토론하는 시민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사유

전쟁은 문명을 무너뜨렸지만,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정신이 피어났다. 공동체는 찢어졌지만,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끝이 아니라, 사유의 시작이었다.

 

그리스는 이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서양 철학과 민주주의,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고통이 없었다면, 질문도 없었다. 질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간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