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지만 고요한 존재, 말없이 우리 곁을 걷는 그 여신에 대하여
누군가의 연인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여신
세상의 많은 신들이 사랑을 이야기할 때,
한 여신은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바란 존재.
그 이름은 아르테미스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분명했다.
어느 날, 아르테미스는 아버지 제우스 앞에 섰다.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위해 열두 가지 소원을 청했다.
그 첫 번째는 “나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었다.
단순한 '순결'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속하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였다.
그녀는 그렇게 ‘고독’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녀를 더욱 단단한 존재로 만들었다.
달과 태양, 숲과 도시 – 쌍둥이의 두 길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쌍둥이다.
같은 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들의 길은 언제나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
세상을 환히 비추고, 드러내고, 이끌어가는 존재.
그에 비해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었다.
어둠을 감싸고, 침묵을 안으며, 말없이 주시하는 존재.
하나는 도시의 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숲의 여신이었다.
그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를 비추고, 균형을 이루는 존재였다.
낮과 밤처럼, 이성과 본능처럼.
'순결'이라는 이름의 오해
사람들은 아르테미스를 ‘처녀의 여신’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부족하다.
고대에서 말하는 ‘순결’은 단순히 성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자기 통제의 힘이었다.
아르테미스는 결혼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연애하지 않았고,
자기 몸과 시간을 타인의 요구에 내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원했고,
그건 억압이 아닌 자유였다.
말없이 함께 걷는 이들과의 연대
혼자 걷는 여정이라고 해서,
그 길이 완전히 외로운 것만은 아니다.
아르테미스의 곁에는 늘 님프들이 있었다.
사냥을 함께하고, 침묵 속에서 걷고, 노래하고 웃던 존재들.
그녀는 그들과 거리를 유지했지만, 그건 차가움이 아니었다.
간섭하지 않는 친밀함, 존중으로 유지되는 관계였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말보다 리듬이,
소유보다 자유가 관계를 유지했다.
아르테미스는 왜 분노했는가
사람들은 아르테미스를 차갑다고 말한다.
분노가 잦았고, 그 분노는 종종 잔혹했다.
하지만 그건 감정 폭발이 아니었다.
그녀의 분노는 언제나 경계가 침범당했을 때 일어났다.
액타이온이 그녀의 목욕을 엿보았을 때,
칼리스토가 제우스에 의해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니오베가 그녀의 어머니를 모욕했을 때.
그녀는 활을 들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지키는 세계의 질서를 위한 분노였다.
달빛처럼 말없이 비추는 존재
달은 소리 없이 빛난다.
태양처럼 모든 걸 밝히지 않고,
그저 조용히 주변을 감싸는 빛.
아르테미스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는 예언하지 않았고, 연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그녀의 리듬을 따라 움직였다.
말없이 주시하고,
움직이지 않아도 존재를 드러내는 여신.
그녀는 바꾸려 하기보다는, 바라봐주는 존재였다.
지금, 우리의 도시에도 그녀는 있다
카페 구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걷는 사람.
그들은 외롭지 않다.
그들은 아르테미스를 닮았다.
함께 있어야 괜찮은 사람이라는 세상의 기준을 벗어나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한 이들.
그녀는 말없이 질문한다.
“나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로,
괜찮은 사람일 수는 없을까?”
경계는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한 보호막
사람들은 경계를 나쁘게 여긴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는 말했다.
“경계는 나를 위한 숲이야.”
그녀는 그 숲 속에서 사냥했다.
활은 타인을 겨눈 것이 아니라,
자기 경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마음에도 그런 숲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
말로 하지 않아도 이해받고 싶은 공간.
그걸 지키는 건 차가움이 아니라 온전함을 위한 배려다.
페르세포네와 아르테미스 – 어둠 속의 두 여성
하나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했고,
다른 하나는 끌려가 고립되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와 페르세포네는
모두 스스로를 찾는 여정을 걸었다.
아르테미스는 고요함을 지켰고,
페르세포네는 고요함 속에 길들여졌다.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 존재의 중심을 회복한 여신이었다.
리안이 말하는 아르테미스
나는 연결되고 싶었지만,
또 동시에 혼자 있고 싶었다.
침묵 속에서 상처받고,
말없이 내 감정을 다독이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르테미스를 떠올렸다.
외로움 속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외로움을 스스로 품은 존재.
그녀의 숲은 도피가 아니었다.
그건 자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 숲에서 나를 만났다.
예술 속의 아르테미스는 여전히 걷는다
📽️ 『노매드랜드』, 📖 『자기만의 방』, 🚶 『와일드』…
그 속의 여성들은 모두
아르테미스를 닮았다.
사랑보다 고요를 택하고,
말보다 침묵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녀는 더 이상 신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걷는 거리,
우리가 고요히 머무는 방,
우리가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아르테미스는 우리 곁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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