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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양 한 스푼/사물의 유래

커튼, 공간을 나누고 마음을 품다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4.

커튼을 걷는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그 순간은, 하루를 여는 의식 같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이 천 조각에는
수천 년을 거쳐 변해 온 인간의 삶과 욕망, 그리고 사회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천 한 장으로 지켰던 것들 – 커튼의 시작

가장 오래된 커튼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벽에 창이 없었기 때문에, 문이나 입구에 천을 걸어
먼지나 해충, 더운 바람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천은 왕이나 귀족의 거처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뿐 아니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부자들이 목욕탕의 입구나 침실
무거운 천을 걸어 공간을 분리했고,
중세 유럽으로 넘어오면 커튼은 더 실용적인 용도로 진화한다.

 

고대 이집트 출입구에 쓰였던 커튼


중세 유럽 – 단순한 천이 가진 의미의 확대

중세 유럽에서 커튼은 생존과 일상에 더 밀착된 사물이 된다.
당시의 주거는 대부분 돌과 나무로 지은 구조였고,
창문은 작고 유리가 없어 밖의 냄새나 바람, 벌레가 그대로 들어왔다.

커튼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도구였다.


린넨이나 울 천으로 된 커튼은 창이나 침대 주위에 둘러쳐
바람을 막고 체온을 유지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위생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일부 지역에서는 창밖으로 배설물을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창문 안쪽에 커튼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이다.

즉, 중세의 커튼은 단지 장식이나 햇빛 차단을 넘어
더럽고 위험한 외부로부터의 방어막이었다.

 

중세 유럽 실내공간에 사용하던 커튼


침대 커튼 – 사생활을 지키는 유일한 공간

중세의 부유한 가정에서는 침대 주위에 커튼을 치는 구조가 등장했다.
'포스터 베드(Four-poster bed)'라고 불리는 이 침대는
사방에 커튼을 둘러쳐 밤에는 닫고 낮에는 걷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커튼은 사생활 보호 외에도 병을 막고,
귀신이나 악령을 차단한다는 믿음까지 함께 담고 있었다.
종교적·심리적 의미까지 겹쳐 있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 '포스터 베드(Four-poster bed)'에 쳐졌던 커튼


근대 – 햇빛을 가리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다

산업혁명 이후, 유리창이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되면서
커튼은 본격적으로 햇빛과 시선을 가리는 도구로 자리잡는다.
이 시기부터 커튼은

방 안의 프라이버시 보호, 실내 온도 조절, 인테리어 장식이라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커튼의 재질, 주름, 무늬에 따라 그 집의 계급과 취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문 하나에도 사회적 지위가 투영되던 시절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커튼의 화려함

 


오늘, 커튼은 마음을 닫거나 여는 장치

지금의 커튼은 기능 이상의 상징을 가진다.
햇살을 막기도 하고, 바람을 흘려보내기도 하며,
무엇보다 시선과 마음을 차단하거나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 커튼을 ‘탁’ 걷는 순간,
공기와 함께 기분도 바뀐다.

때론 어둡고 두터운 커튼을 치고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아침이 되어 커튼을 젖히는 순간,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나기도 한다.

커튼은 이제 바람을 막는 천이 아니라,
우리 안의 마음결을 드러내는 장치로 변했다.

 

현대에 보여지는 커튼 심리적 안식과 정체성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