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노스 이야기-왕권을 물려받은 아들, 두려움 속에 자식을 삼킨 신 크로노스 이야기-왕권을 물려받은 아들, 두려움 속에 자식을 삼킨 신
본문 바로가기
그리스 로마 신화 다시 읽기/신들의 이야기

크로노스 이야기-왕권을 물려받은 아들, 두려움 속에 자식을 삼킨 신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2.

아버지를 쓰러뜨린 자, 신들의 첫 반역자

태초의 하늘과 대지,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세상의 근간을 이룬 존재였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일부—특히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는
그 강대한 힘과 외형 때문에 우라노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지 않고,
어머니 가이아의 몸속 깊은 곳에 가두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

 

고통과 분노에 휩싸인 가이아는 이 불의한 아버지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자식들은 우라노스의 위엄 앞에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그때, 막내였던 티탄 크로노스(Cronus)가 나섰다.


그는 아버지의 억압과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었다.

가이아가 준비한 아다만틴의 낫을 들고,
우라노스가 대지로 내려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밤,
우라노스가 가이아를 감싸 안는 찰나—
크로노스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아버지의 생식기를 절단했다.

 

크로노스가 매목하여 우라노스를 공격


흘러내린 피와 바다의 거품, 새로운 존재들의 탄생

우라노스의 피가 대지에 떨어지자
그 피로부터 새로운 존재들이 태어났다.

 

에리니에스(Erynyes): 복수의 여신들. 범죄와 피의 대가를 쫓는 존재

기간테스(Gigantes): 거대한 반신반인의 전사

멜리아이(Meliae): 물푸레나무에서 태어난 요정들

 

그리고 잘려나간 생식기가 바다에 떨어졌을 때,
그곳에서 일어난 하얀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Aphrodite)가 태어난다.
사랑과 미의 여신.
폭력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은,
신화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탄생 중 하나로 기록된다.


크로노스, 권좌를 차지하다

크로노스는 이 반란으로 하늘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그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 티탄의 시대(Titanomachy 이전의 통치기)를 열었다.

 

세상에는 다시 빛과 질서가 생겼고,
우라노스는 하늘로 물러나 영영 땅과 닿지 않게 되었다.하늘과 땅의 분리,
 세상의 경계가 생겨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찬란한 승리에는 한 가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우라노스가 남긴 예언이다.

 

“너도, 너의 자식에게 쓰러질 것이다.”

 

크로노스는 이 말을 잊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승리의 기쁨보다 몰락에 대한 공포가 더 깊게 새겨져 있었다.


자식을 삼킨 신

우라노스의 예언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크로노스는 누군가가 자신처럼 그를 쓰러뜨리러 올 날이 두려웠다.

 

그는 티탄 중의 한 명인 레아(Rhea)와 결혼해 자식을 낳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그는 곧장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첫째: 헤스티아(Hestia)

둘째: 데메테르(Demeter)

셋째: 헤라(Hera)

넷째: 하데스(Hades)

다섯째: 포세이돈(Poseidon)

 

크로노스는 자신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집어삼킨 신이었다.

그의 아내 레아는 슬픔에 젖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결국 반란을 결심했다.


제우스, 비밀리에 자라난 희망

여섯 번째 아이는 제우스(Zeus)였다.
레아는 몰래 제우스를 크레타 섬으로 보내 키우고, 크로노스에게는 돌덩이를 포대에 싸서 주었다.

크로노스는 그 돌을 삼키고, 자신이 또 하나의 위협을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위협은 그 순간 자라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제우스는 성장해 신들 사이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레아가 아기 제우스를 크레타섬의 요정에게 맡기는 모습

 

그는 지혜의 여신 메티스(Metis)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에게 구토약을 먹이고,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되찾았다.

 

크로노스에게 구토약을 먹이는 제우스

 


반복되는 운명, 그리고 전쟁

이 사건은 신과 신의 전쟁, 티타노마키아(Titanomachy)로 이어졌다.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들—올림포스 신들—은
티탄 신들과 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승리했다.

 

크로노스는 타르타로스 깊은 곳에 유폐되었고,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넘어갔다.
그가 두려워했던 예언은 현실이 되었고, 또 다른 세대의 신들이 하늘을 지배하게 되었다.


크로노스, 권력의 본질을 말하다

크로노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왕좌 찬탈과 몰락의 서사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를 쓰러뜨려 권력을 쟁취했지만, 자식에게 몰락할 운명을 피하려다
그보다 더 끔찍한 죄를 저지른 신이었다.

그는 과거를 두려워했고, 미래를 막기 위해 현재를 파괴했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으로 쌓은 권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선
또 다른 제우스가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