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 시리즈 7
트로이 전쟁의 전환점, 아킬레우스가 움직이지 않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브리세이스를 둘러싼 갈등 이후 침묵에 빠진 아킬레우스. 그의 자리를 대신해 전장에 나선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우지만, 결국 헥토르의 손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 편에서는 《일리아스》의 중심부인 파트로클로스의 출전과 전사,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깨어나는 결정적 순간을 다룬다. 아폴론의 개입, 헥토르의 돌진, 제우스와 테티스의 설득, 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의 갑옷 제작까지. 전쟁은 이제 인간과 신, 감정과 복수, 명예와 죽음이 얽힌 운명의 소용돌이로 향하고 있다.
"이 전쟁의 중심에는 단 한 사람의 외침이 있었다. ‘나는 싸우지 않겠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침묵의 영웅 – 무너져가는 전선과 움직이지 않는 자
그리스 연합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트로이 해안에 상륙한 뒤 승기를 잡았던 전세는, 어느새 완전히 뒤집혔다. 아폴론의 활에서 시작된 전염병, 아가멤논의 오만, 브리세이스를 둘러싼 갈등은 군 전체를 흔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한 사람의 부재였다. 아킬레우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천막 안에 머물고 있었다. 병사들이 죽어나가도, 아가멤논이 동요해도 그는 침묵했다. 장수들은 찾아와 싸움터로 돌아와달라고 간청했지만, 아킬레우스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가 전장에 나서는 일은, 명예를 회복하기 전까지 없을 터였다.
전장은 점점 참혹해졌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성문을 넘어 그리스 진영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그는 아폴론의 힘을 등에 업고 공격을 이끌었고, 병사들은 그의 창 앞에 쓰러졌다. 그는 이미 방벽을 돌파했고, 그리스의 배들이 정박한 해안까지 도달했다. 곧 군함에 불이 붙는 순간, 전쟁은 그리스의 패배로 끝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이때, 파트로클로스가 나선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당신이 싸우지 않겠다면, 내가 나가겠어.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이 돌아온 줄 알게 해야 해. 당신의 갑옷이 필요해.”
아킬레우스는 흔들렸고, 그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갑옷을 벗어 친구에게 내어주며 덧붙였다.
“약속해. 트로이 성문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파트로클로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은 이미 전장을 향하고 있었다.
대리인의 최후 – 착각된 영웅, 진실의 종말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전장에 등장한 파트로클로스는 단숨에 전세를 반전시켰다. 병사들은 환호했고, 아킬레우스가 돌아왔다고 믿은 그들은 사기를 되찾았다. 혼란에 빠진 트로이 진영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파트로클로스는 그리스 진영을 정비하며 놀라운 전투력을 보였다. 그는 트로이의 성문 바로 앞까지 적들을 몰아붙였고, 수많은 장수들을 쓰러뜨렸다. 그중에는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도 있었다. 파트로클로스는 그를 베어 넘어뜨렸고, 그 전투는 곧 신들의 마음까지 격동시켰다.
제우스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마치 피처럼 붉고 무거웠지만, 그는 끝내 사르페돈의 죽음을 막지 않았다. 신이었지만, 운명은 그조차 거스를 수 없었다.. 사르페돈의 시신은 아폴론이 직접 수습한 뒤, 쌍둥이 형제인 히프노스와 타나토스에게 맡겨 리키아로 옮겨지게 했다. 그러나 전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깊이 전장 안으로 들어간 파트로클로스는 결국 아킬레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그는 트로이의 성문 앞까지 달려들었고, 그 순간 아폴론이 개입해 그의 등을 세 차례 가격했다.

“너는 지금, 네가 아닌 자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파트로클로스는 방패를 떨어뜨리고, 투구도 벗겨졌다. 그 순간, 트로이 전사 에우포르보스가 그에게 첫 타격을 가했고, 이어 헥토르가 창을 던졌다. 그 창은 정확히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죽어가며,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를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내 목숨은 네 손에 떨어졌지만, 네 힘 때문은 아니다. 신들이 너를 지켰을 뿐이다. 하지만 조심해라, 아킬레우스는 그런 도움 없이도 너를 쓰러뜨릴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헥토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몸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벗겨내어, 자신의 몸에 걸쳤다. 이제 전장의 무게는 다시 옮겨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분노의 눈물 – 친구의 죽음과 전사의 각성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는 목숨을 걸고 시신을 회수했다. 화살과 창이 빗발치는 전장을 뚫고 파트로클로스의 몸을 들것에 실어 아킬레우스의 천막 앞으로 데려왔다. 아킬레우스는 천막에서 나와, 피로 물든 친구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을 뻗어 친구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는 마침내 울부짖었다. 대지 전체가 그의 절규에 떨리는 듯했다.
“내가 그를 보냈다. 내가 갑옷을 줬고, 내가 그를 죽게 했다.”
그는 어머니 테티스를 불렀다. 테티스는 물결을 가르고 육지로 올라와, 아들의 눈물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아킬레우스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싸우겠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헥토르를 죽이겠다.”
테티스는 곧장 올림포스로 향했다. 그녀는 제우스 앞에 무릎 꿇고, 아들의 복수를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의 저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테티스는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아킬레우스를 위한 새로운 갑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 전쟁이 끝나려면, 더 깊은 슬픔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아킬레우스는 다시 검을 들었다.
📌 TIP – 갑옷은 누구의 것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갑옷은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사의 이름이자 명예였고, 정체성이었다.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이름을 입고 싸웠지만,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그러나 그 죽음은 진짜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부활시켰다.
파트로클로스의 비극은 하나의 물음을 남긴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입고 싸우고 있는가?”
트로이 전쟁 시리즈 8 아킬레우스의 복귀와 헥토르의 최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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