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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양 한 스푼/사라진 것들의 기록

공중전화 – 동전 한 입에 담았던 마음들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3.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순간,
우리는  손에 100원을 꼭 쥐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청록색 유리문이 달린 전화 부스 안에서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짧은 고백을 남기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조차 어려운 공중전화.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을 건넸다.


공중전화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 세계 최초의 공중전화는 1889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명됐다.
    병든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던 윌리엄 그레이(William Gray)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누구나 전화를 쓸 수 있도록 동전 투입식 자동 전화기를 만들었다.
  • 한국에서는 1902년, 대한제국 시절
    서울 중앙우체국 앞에 전화 통화용 공중시설이 설치되면서
    ‘공중전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만 지금처럼 거리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 1970년대 후반, 한국에도 본격적인
    동전 투입식 공중전화기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를 지나며 길거리 전화박스는 전국적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공중전화의 전성기

  • 1982년: 전국 공중전화 수 약 6만 5천 대
  • 1998년: 16만 4천 대로 정점을 찍음

공중전화는
지하철 출입구, 학교 앞, 시외버스터미널, 병원, 군부대, 공원 등
사람이 머무는 모든 장소에 자리했다.

 

누군가는 친구와 장난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첫 고백을 준비하며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늦은 귀가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휴가 중인 군인의 손엔 늘 100원이 쥐어져 있었다.

그 부스 안은 작은 칸막이였지만,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망설이던 감정은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무겁고 따뜻했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묻는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나요?”

 대부분은 불가능했다.

공중전화에도 전화번호는 있었지만,
수신(전화를 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 이유는 장시간 점유, 장난전화, 범죄 악용 방지 때문.
  • 일부 지역(군부대, 병원 등)에서는 제한적으로 수신 가능 공중전화가 있었으나
    일반적인 사용은 ‘발신 전용’이 원칙이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을까?

공중전화 자체에는 음성 녹음 기능이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통신사에서 제공한
‘음성사서함 서비스’(예: KT의 01410 등)를 이용하면
공중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는 있었다.

  • 전화를 걸어 사서함에 접속 → ‘삐—’ 소리 → 녹음
  • 삐삐 사용자나 특정 이용자는 이 사서함에 전화로 접속해 메시지를 들었다.

 

다만 이건 공중전화 자체 기능이 아니라
가입자에 한해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사서함 번호를 알아야 하고 별도 인증이 필요했기에
많은 이들에게는 낯설거나 쓰이지 않는 기능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진 부스

  •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 보급률이 급증
  • 1999년부터 공중전화 수요 감소 → KT는 점진적으로 철거 시작
  • 2023년 기준, 전국 공중전화 수는 9,743대로 줄어듦
     (1998년 대비 94% 이상 감소)

남은 공중전화는

  • 비상용 통신 수단
  • 장애인 전용 전화
  • 일부 상징적 보존물
    정도로만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남은 기억들

무심코 건넸던 안부,
망설이다 끝내 누르지 못한 번호,
동전이 떨어지며 뚝 끊긴 말 한마디.

공중전화는 더 이상 없지만,
그 안에서 오갔던 감정은
지금의 빠른 소통보다 훨씬 오래 남아 있다.

 

공중전화 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