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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다시 읽기/신화와 예술

왜 우리는 여전히 신화를 예술로 만날까?

by 리안과의 만남 2025. 3. 22.

스크롤을 내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림 한 장.
배경은 바다,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는 여인, 화려한 색과 섬세한 붓질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다.

누군가는 신화 시간에 배웠고, 누군가는 연애 이야기처럼 들었고, 누군가는 그냥 속 옷 브랜드쯤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이런 오래된 신화 속 여신이 왜 아직도 그림 속에 살아 있는 걸까?
왜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신화를 그리고, 조각하고, 표현하는 걸까?

산드라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생각해보면 신화는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수천 년 전, 인간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만든 서사.
태양이 뜨고 지는 이유, 봄이 오고 겨울이 가는 순환, 사랑과 배신, 희생과 죽음…
그 모든 걸 신과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낸 게 신화였다.

신화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다.
그 안엔 인간의 감정이 담겨 있다.
갈망, 질투, 충동, 고통, 두려움, 사랑.
신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였다.

예술가들은 그런 이야기와 감정에 반응한다.
어떤 시대에 태어났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든,
결국 예술가들이 담고자 하는 건 사람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이다.
그리고 신화는 인간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풍부하고 매혹적인 재료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이야기.
그건 단순히 불이라는 도구를 가져온 사건이 아니다.
지식을 얻고 문명을 일으키는 대가로 고통을 감수한 존재의 이야기다.
예술가들은 그 장면에서 희생과 진보, 금기를 깨는 용기를 본다.

페르세포네가 납치당해 지하 세계로 끌려간 이야기.
그건 단순한 납치극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삶과 죽음, 여성의 성장과 분리라는 상징이 숨어 있다.
화가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고통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을 그려낸다.

이런 신화들은 단지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을 부르며 계속해서 예술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래서 신화는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고, 조각이 되고, 영화가 된다.
예술을 통해 신화는 다시 살아나고, 신화를 통해 예술은 더 깊어진다.


이 블로그에서는
명화 속에 담긴 신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한다.
그림만 보면 잘 모를 수 있는 이야기의 배경, 상징, 감정.
작가는 왜 이 장면을 택했을까?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지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감각이 조금 더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술 안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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