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본문 바로가기
신화 다시 읽기/신들의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by 리안과의 만남 2025. 6. 10.

신들에 의해 창조된 존재, 시대에 따라 다시 태어난 이야기. 신들의 전쟁과 세계의 질서가 정비된 뒤에야 인간은 비로소 세상에 등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하나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시기와 관점, 전승에 따라 각기 다른 ‘창조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네 가지 버전을 중심으로 인간 출현의 신화를 살펴보자보고자 한다.

 

 프로메테우스와 흙으로 빚어진 인간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설화는 티탄족의 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와 우라노스의 아들인 이아페토스(Iapetos)의 자식으로 형제들인 아틀라스, 메노이티오스, 에피메테우스와 함께 티탄족 중에서도 지혜와 예지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올림포스의 질서가 자리 잡은 뒤, 신들은 세상에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는 임무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주어졌다. 그는 흙과 물을 섞어 신들의 모습처럼 인간을 빚었다 고 전해진다.

스스로 만든 인간들에게 애정을 품게 된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고 깊은 연민을 느꼈다.
신들은 인간에게 불을 주는 것을 금지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그 규율을 어기고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다.
이 불은 단순한 온기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요리, 대장장이, 건축, 농업, 예술, 언어, 사유 등 문명 전체의 출발점이 되는 신성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 행위는 신들의 질서를 어긴 것이었고 제우스는 분노했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가로 카우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벌을 받는다. 이 장면은 인간을 위한 희생이라는 상징으로 이후 수많은 예술과 철학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헤시오도스의 『작업과 나날』*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인간 창조 설화로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신의 선물로 불과 문명을 얻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창조되었다

헤시오도스가 말한 다섯 시대의 인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인간이 한 번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 『일과 날들』(Works and Days)에서는 인간이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시대에 걸쳐 신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각 시대는 저마다의 성격과 운명을 지니며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점점 더 타락하고 불행해진다.


1. 황금의 시대 – 신과 가까웠던 완전한 삶

가장 처음 등장한 인간들은 크로노스의 통치 시기, 곧 '황금시대'에 살았다. 이들은 신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고 노동이나 고통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 질병이나 노화의 고통도 없었으며 죽음은 마치 잠들 듯 조용히 다가왔다. 인간들은 땅에서 저절로 나는 풍요로운 수확으로 살아갔고 서로를 속이거나 다투는 일도 없었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죽은 후에도 지하세계로 가지 않고 수호령(다이몬)이 되어 세상을 지키는 존재가 되었다.

 

다이몬 =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삶을 인도하거나 보호하는 영적인 존재


2. 은의 시대 – 신을 외면한 유년기의 인간들

다음으로 등장한 '은의 시대'의 인간들은 이전보다 훨씬 미성숙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오랜 유년기를 보냈으며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였다. 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제사를 멀리하며 불경을 일삼았다. 제우스는 이 무례한 인간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들을 멸망시켰고 은의 시대는 끝났다. 죽은 뒤 이들은 황금시대의 인간들과 달리 신성한 영혼이 되지 못했다.


3. 청동의 시대 – 전쟁에 사로잡힌 인간들

세 번째 시대인 '청동의 시대'의 인간들은 강하고 거칠었다. 이들은 청동으로 만든 도구와 무기를 사용했고 삶의 대부분을 전쟁에 바쳤다. 마음은 잔인했고 몸은 단단했다. 인간들은 전장을 숭배했고 결국 서로를 죽이다 스스로 멸망했다. 이 시대는 오직 파괴와 폭력의 상징으로 남는다. 청동의 인간들은 죽은 뒤에도 어떤 영적 형상으로 남지 못했다.


4. 영웅의 시대 – 신화 속 인물들의 시대

네 번째 시대는 특별하다. 헤시오도스는 이 시대를 ‘신성한 인종’이라고 부르며 앞선 시대들과 달리 존중하는 어조로 묘사한다. 트로이 전쟁이나 테베 전쟁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신화적 사건들이 이 시대에 일어났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같은 신화 속 영웅들이 이 시대의 인간이었다. 이들은 다른 시대의 인간들보다 정의롭고 용감했으며 죽은 뒤에는 엘리시온 들판(Elysium)으로 가 영원한 축복을 받았다.

 

엘리시온(Elysium) = 고대 그리스판 ‘천국’
→ 신들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 죽은 후 영원한 평화를 누리는 이상향


5. 철의 시대 – 우리가 사는 현실의 시대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가 사는 ‘철의 시대’가 있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도덕적 타락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 끝없는 노동과 질병, 전쟁, 배신이 일상이며 인간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해치며 살아간다. 가족 간의 신뢰도 무너지고 선보다 악이 더 우세하다. 헤시오도스는 이 시대를 가장 한탄하며 신들이 이 인간들을 더는 돕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시대는 '가장 불행한 시대'로 남는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과 변화를 역사적 흐름처럼 묘사한다.
초기의 인간은 이상적인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완전한 모습으로 변화했다는 해석을 담고 있다.

 

 

데우칼리온과 피라 – 대홍수 이후 돌에서 태어난 새로운 인류

신들은 인간을 한 차례 창조했지만 그 존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인간들은 신들의 뜻을 거슬렀고 끝내 도를 넘는 타락에 이르렀다. 이를 본 제우스는 분노하여 거대한 홍수를 일으켰다. 이로인해  인류는 거의 전멸하게 되었으나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티탄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는 신의 자비를 얻어 살아남았다. 그들은 파르나소스 산 정상에 올라 신들에게 인간을 다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신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너희 어머니의 뼈를 뒤로 던져라.” 이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어머니’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그 뼈’는 그녀의 일부인 돌을 의미했다.

두 사람은 그 뜻을 깨닫고 등 뒤로 돌을 던졌다. 그러자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에서는 남자가 피라가 던진 돌에서는 여자가 태어났다. 이처럼 인류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신화는 단순한 생존담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깊은 연결 그리고 멸망 이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돌은 죽음 이후 남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씨앗이 되어 인간을 다시 꽃피우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가이아의 뼈 즉 돌을 뒤로 던지자 남자와 여자가 생겨났다.

 

 

오토크톤 – 땅에서 스스로 솟아난 아테네의 인간들

 

그리스 세계의 여러 지역에는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다양한 신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이나 조상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땅에서 직접 솟아났다고 믿었다.

이런 사람들을 오토크톤(Autochthon)이라 부르며 이는 '자기 땅에서 난 자'라는 뜻이다.

 

이 전승에 따르면, 아테네인은 외부에서 이주해온 존재가 아니라 아티카 대지 그 자체의 일부였다.

대표적인 토착 영웅으로는 케크롭스(Kekrops)와 에렉테우스(Erechtheus)가 있으며, 이들은 인간이자 동시에 땅과 연결된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다. 이러한 신화는 단지 기원의 문제를 넘어서 아테네 시민들의 뿌리 깊은 자부심과 독립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였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 자격의 정당성을 설명할 때에도 이 오토크톤 신화를 근거로 삼았다.

자신들이 외부의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존재라는 자각은 민주주의가 성립되는 데 있어 일종의 정체성 기반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기원은 단 하나의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신이 빚어낸 존재로서 여러 시대를 거쳐 창조되고 타락한 존재로서 때로는 자연 그 자체로부터 솟아난 존재로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기원의 이야기는 곧 각 지역과 시대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신화적 기록이 된다.

 

오토크톤(Autochthon)  '자기 땅에서 난 자'

 

인간 창조 신화의 의미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단 한 번, 단 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각 시대와 지역, 작가마다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 속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자 고통을 겪는 존재 또는 다시 일어서는 존재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다양한 신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고민을 반영한다.
어디서 왔고, 왜 살아가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각 신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야기가 좋았다면,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 블로그 홈에서 새 글 확인하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