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척의 함대, 트로이 앞에 닿다 – 트로이전쟁의 시작
트로이 전쟁 시리즈 5
이 글은 트로이 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다룬다.
이피게네이아의 희생 이후 출항한 천 척의 함대, 트로이 해안에 발을 디딘 첫 번째 전사 프로테실라오스의 죽음, 그리고 그의 아내 라우다미아와의 가슴 아픈 재회가 펼쳐진다.
초기 전투와 아킬레우스의 첫 활약, 트로이 방어전까지, 전쟁의 불이 어떻게 붙었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낸 서사다.
트로이 신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한 편에서 영웅들의 시작과 그 뒤에 숨은 인간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자, 전설이 출항했다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이 끝나자 마침내 아울리스의 바다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백 척의 배로 이뤄진 거대한 함대가 일제히 돛을 올렸다. 이 장면은 훗날 “천 척의 함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며, 그리스 전설의 일부가 된다. 각지에서 모인 왕과 장군들, 병사들은 한 방향으로 항해했다. 목적지는 트로이.
왕비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그 이상의 명예를 위해. 그들은 단순히 한 여인을 쫓는 것이 아니었다.
왕의 명예, 도시의 결속, 공동체의 약속을 걸고 떠나는 전쟁이었다.
이 원정에는 명망 높은 영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전체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아야 할 전쟁의 당사자였다. 이타카에서는 지략으로 이름난 오디세우스, 아르골리스에서는 용맹한 젊은 왕 디오메데스가 군을 이끌었다. 살라미스의 거인 아이아스, 로크리스의 날쌘 아이아스 소(小), 그리고 테살리아 퓌티아의 반신반인 영웅 아킬레우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각 도시국가의 대표 전사로서, 단순한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위신을 걸고 출전한 인물들이었다.
이토록 강력한 연합군이 하나로 뭉친 것은, 그리스 역사와 신화 속에서도 드물게 등장하는 거대한 연대였다.
한편, 트로이 측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이 거대한 연합군의 소식을 듣고 도시 방어에 나섰고, 그 중심에는 아들 헥토르가 있었다. 헥토르는 아버지를 보좌하며 전략을 짜고, 백성들을 독려했다. 전쟁의 첫 물결이 곧 밀려올 것이었다.
첫 희생, 프로테실라오스의 이름
연합군이 트로이 앞바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벌어진 일은 상륙 작전이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 예언이 있었다.
“트로이 땅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자가 죽게 되리라.”
이 예언은 연합군 사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첫발을 디딜 것인가? 누가 이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 순간, 한 인물이 앞으로 나선다. 프로테실라오스, 테살리아의 왕이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검을 뽑아 하늘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명예 없는 삶보다, 기억되는 죽음을 택하겠다.”
그는 트로이 해변에 첫발을 디딘다. 그리고 예언은 적중했다. 그는 곧 적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하지만 그 발걸음 덕분에 나머지 군대는 뒤따를 수 있었고, 트로이 앞 해변은 곧 전장의 첫 무대가 된다.
프로테실라오스의 죽음은 아내 라우다미아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긴다. 신들이 그녀에게 단 하루만 다시 만나게 해주자, 그녀는 하루가 끝난 후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이야기는 전쟁의 첫 희생이 남긴 인간적 고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 TIP : 라우다미아와 프로테실라오스_단 하루의 재회, 영원한 이별 프로테실라오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예언된 첫 번째 희생자였다. 그는 테살리아의 필라케를 다스리던 젊은 왕이며, 아내 라우다미아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예언에 따르면, 트로이 땅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자가 죽게 되리라 했고, 그는 그 운명을 받아들여 상륙 후 전사한다. 비보는 곧바로 고향에 전해졌고, 라우다미아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들에게 매일같이 간절히 기도했다. 그 절절한 슬픔에 감동한 신들은 특별한 자비를 베푼다. 하루 동안, 프로테실라오스의 영혼이 생전에 쓰던 모습 그대로 다시 라우다미아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는 단지 꿈속 환영이나 유령이 아니었다. 손을 잡을 수도 있었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며, 그날만큼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재회의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해가 다시 떠오르자 프로테실라오스는 저승으로 돌아가야 했다. 라우다미아는 그 이별을 견디지 못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의 형상을 본떠 만든 조각상을 매일 껴안고 지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조각상을 불태우자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의 첫 희생이 남긴 순수하고 비극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남았고, 훗날 그리스 비극에서 전쟁 밖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사로 자주 인용되었다. |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후 벌어진 초반 전투들은 『사이프리아』라는 서사시에서 전해진다. 이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앞선 시기의 전투들을 다루며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몇몇 장면들은 전승을 통해 남아 있다.
아킬레우스는 상륙 초반부터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트로이 동맹 도시들을 차례로 공격했고, 특히 텐도스와 리르네소스를 함락시키며 연합군 내에서 빠르게 영웅의 명성을 얻게 된다.그는 이 과정에서 브리세이스와 크리세이스라는 여인들을 포로로 삼는다. 이들은 후에 큰 갈등의 씨앗이 된다.
트로이 성은 견고했고, 수비도 단단했다. 헥토르를 중심으로 한 수비군은 성문 앞에서 방어선을 펼쳤고, 격렬한 전투가 반복되었다.
이 시기, 전쟁은 아직 신들의 직접 개입 없이 인간들끼리 벌이는 전투에 가까웠다. 그러나 곧 아폴론,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 등 올림포스의 신들이 각 진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쟁은 단순한 인간의 싸움이 아닌 신과 인간이 함께 벌이는 서사시로 변해간다.
전쟁의 시작은 그렇게 불이 붙었다. 천 척의 함대가 몰고 온 불꽃은 점점 더 커졌고, 수많은 영웅들이 이 전장의 중심에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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