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 함께 마시는 철학의 시간
‘심포지엄’은 단순한 학술 모임이 아니다. 이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술을 마시며 철학과 예술, 사랑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밤의 시간을 의미했다. 플라톤의 『심포지온』에 등장하는 여섯 인물이 각자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며 펼치는 에로스에 대한 대화처럼, 이 단어는 지성과 감정, 인간다움이 한자리에 모이는 고전의 향기를 품고 있다.
우리는 ‘심포지엄’이라고 하면 보통 커다란 행사장, 공식적인 학술 모임, 단상 위에서 발표하는 전문가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심포지엄(symposium)의 본래 의미는 ‘같이 마시는 자리’였다. 그것도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인생, 예술과 철학이 오가는 따뜻한 대화의 공간이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저녁 식사가 끝나면,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들여 와인을 나누었다. 긴 소파에 기대어 앉은 남성 시민들 사이에는 악사가 있었고, 향을 피우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화의 주제는 자유로웠고, 때로는 시를 낭송하고, 때로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적인 유희와 인간적인 교감이 공존하던 자리—그것이 진짜 ‘심포지엄’이었다.
현대적 쓰임
오늘날 ‘심포지엄’은 흔히 학술 세미나, 공공 포럼, 전문가 토론 등으로 사용된다. ‘○○심포지엄’이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본래 이 말이 담고 있는 느낌은 훨씬 더 부드럽고 인간적이다.
실제로도 요즘의 심포지엄은 단순 발표에서 벗어나, 관객과 발표자가 함께 사유하고 질문을 나누는 자리로 변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 토크, 철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북토크, 비평가들이 모여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인문학 살롱—이런 모임들이 모두 현대의 심포지엄이다.
즉,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 배우며,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가보자’는 마음이 있는 자리라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심포지엄이다.
유래 서사 – 단어의 뿌리로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συμπόσιον (symposion)에서 왔다.
이 단어는 syn (συν, 함께) + posis (πόσις, 마심)이라는 두 단어의 결합으로, 직역하면 ‘함께 마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심포지온은 단순한 술자리 이상이었다. 식사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자리에는 오직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 참여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왼쪽 팔꿈치를 괴고 소파에 기대어 누운 채, 천천히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는 자유롭지만, 주제는 깊었다. 이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도, 시와 음악도, 철학적 주제도 등장했다.
이 심포지온은 단지 말과 술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과 존재가 공유되는 장(場)이었다. 그리스 정신의 핵심, 즉 인간다움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자리가 바로 심포지온이었던 셈이다.
플라톤의 『심포지온』 – 사랑에 대하여
심포지엄이라는 단어의 문화적 상징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플라톤의 『심포지온』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열린 한 심포지온 자리를 배경으로, 여섯 명의 인물이 돌아가며 ‘에로스(사랑)’에 대해 연설하는 형식의 대화편이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철학을 담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사랑을 신의 축복으로, 또 어떤 이는 젊은이와 어른의 관계로, 또 어떤 이는 욕망과 덕의 결합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사랑이란 육체에서 시작해 영혼으로, 지혜로, 결국 진리 그 자체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에로스는 단지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는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공간이 바로 ‘심포지온’이다.
📌 Tip– 플라톤의 심포지온에서의 대화 정확히는 총 7명의 인물이 발언하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파이드로스 → 파우사니아스 → 에뤽시마코스 → 아리스토파네스 → 아가톤 → 소크라테스(+디오티마의 말 인용) → (막판에) 알키비아데스. 알키비아데스는 사랑 자체보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랑과 인물 평에 가까운 내용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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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디오티마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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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
심포지엄은 더 이상 와인을 나누는 고대 그리스의 술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함께 사유하고, 함께 말하며, 서로를 통해 더 넓은 시야를 얻는 시간.
오늘날에도 우리는 카페에서, 강연장에서, 북토크 자리에서 누군가의 말에 마음을 열고, 질문을 던지고, 때론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그 순간이 심포지엄이다. 발표자가 말을 끝냈을 때 누군가 손을 들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한다면, 그곳은 이미 고대 그리스의 소파 위와 다르지 않다.
심포지엄은 지식이 오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다.
‘함께 마신다’는 말 속에는, 단지 술만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 존재 전체를 나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심포지온’이라는 말
- συμπόσιον (symposion): 심포시온 / ‘함께 마시는 것’
- syn (συν): 함께
- posis (πόσις): 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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