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양 한 스푼/세계문화의 유래

히잡 – 가림 너머의 역사

리안과의 만남 2025. 3. 24. 08:01

‘가림’은 억압일까, 선택일까

아랍어로 ‘가리다’는 뜻을 가진 hijab(히잡).
사람들은 흔히 히잡을 단순히 ‘머리를 가리는 천’으로 생각하지만,
이 작은 천 한 조각에는 수천 년 동안 변화해 온 사회와 종교, 여성과 권력의 역사가 담겨 있다.

히잡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보여짐’과 ‘보이지 않음’ 사이의 문화적 대화다.


고대 문명부터 시작된 ‘가림’의 개념

히잡은 이슬람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여성의 몸을 가리는 관습은 이슬람 이전에도 존재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귀족 여성만이 얼굴을 가릴 수 있었고, 노예나 창녀는 얼굴을 드러내야 했다.

이렇듯 가림은 ‘지위’의 상징이었다.

 

고대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에서도
여성의 신체를 덮는 옷이 존재했으며, 이는 남성의 소유물로서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즉, 히잡의 원형은 이미 고대의 신분제와 가부장제 사회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쿠란(코란) 속 히잡의 구절은 무엇을 말하는가?

히잡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쿠란(코란)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쿠란에서 ‘히잡’이라는 단어는 명확히 머리를 가리라는 지시가 아닌,
‘경계’나 ‘막’으로 등장한다.

 

“믿는 여성들이 그들의 시선을 낮추고, 그들의 정숙함을 지키게 하라.
그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말고, 그 머릿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게 하라.”
– 쿠란 24장 31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숙함’을 강조하고
 ‘머릿수건으로 가슴을 가리라’는 구절이지
머리 전체를 덮어야 한다는 명확한 언급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의 여지는
나라별·시대별로 히잡의 ‘형태’와 ‘강제성’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 히잡

히잡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전 세계 이슬람권에는 문화, 종파, 정치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가림의 양식’이 존재한다.

히잡 (Hijab)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고, 얼굴은 드러냄. 가장 널리 쓰이는 기본형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니캅 (Niqab) 얼굴 전체를 가리되 눈만 드러냄. 보통 머리와 몸을 아바야로 감쌈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일부 걸프 국가
부르카 (Burqa) 눈까지 천으로 가려지고 망사창을 통해 시야 확보. 가장 폐쇄적인 형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체제), 파키스탄 일부 지역
차도르 (Chador) 얼굴은 드러내지만 몸 전체를 감싸는 큰 천. 손으로 잡고 다님 이란 전통 복식. 주로 시아파 여성들
아바야 (Abaya)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긴 외투처럼 착용. 히잡과 함께 쓰임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등 걸프 지역

히잡

 

니캅

 

부르카

 

차도르

 

아바야

 

히잡이 모든 이슬람권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튀니지와 터키는 오히려 한동안 히잡을 공공기관에서 금지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튀니지는 1981년부터 세속주의 정책에 따라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히잡 착용을 제한했다.
이는 ‘의복 규정 108호’로 불리며, 히잡을 ‘종교색이 강한 복장’으로 간주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2011년 자스민 혁명 이후,
정권이 바뀌며 이 금지는 사라졌고,
현재는 히잡 착용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다.

 

터키 역시 케말 아타튀르크 이래 강한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해왔으며,
20세기 후반까지 여성은 대학, 법원, 군, 공공기관 등에서
히잡을 착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13년, 에르도안 정부가 이 규제를 완화하며
공공 부문에서도 히잡 착용이 허용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직장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히잡은 이슬람 세계 내부에서도 일관된 상징이 아니며,
국가의 정체성과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작동해왔다.

 

니캅은 아바야와 함께 입는다?

니캅(Niqab)은 얼굴을 가리는 천으로, 눈만 드러나고 나머지는 모두 덮는 형태다.
하지만 니캅은 몸 전체를 덮는 옷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아바야(Abaya)와 함께 착용된다.

아바야는 목부터 발목까지 전신을 감싸는 긴 외투 형태의 의복으로,
니캅을 쓴 여성들이 몸은 아바야로, 얼굴은 니캅으로 가리는 조합이 일반적이다.

즉, 두 의복은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많은 보수적 무슬림 사회에서는 세트처럼 함께 착용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왜 어떤 여성은 ‘히잡을 쓰고’, 어떤 여성은 ‘히잡을 벗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 종교 해석, 정치 권력의 작용까지 겹친 복합적 질문이다.

 

한 사회에서는 히잡을 벗는 순간이 곧 자유를 외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란이다.
이곳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어,
그 규범을 거부하고 머리를 드러내는 행위는 단순한 복장 선택을 넘어
‘나는 선택하고 싶다’는 자기 의지의 표현이 된다.
그들은 천을 벗는 것으로 침묵을 깨고,
거리 위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반대로 서구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일부 국가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제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제도는 오히려 무슬림 여성들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히잡을 신념과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걸 ‘자신의 방식으로 살겠다’는 선택이라 말한다.

결국, 같은 히잡이지만
어디에서, 누가, 왜 쓰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학교 내 히잡 착용이 금지되며 정교분리(secularism)의 원칙을 들이대지만,
무슬림 여성들은 “나의 종교적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반발한다.

 

서구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표현하는 히잡 쓴 여성


히잡을 쓴다는 것, 감추는 것이 아닌 드러내는 것

전 세계적으로 히잡을 패션으로 해석하는 흐름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모데스트 패션(Modest Fashion)'이라고 부르며,
대형 브랜드들이 히잡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히잡은 이제 ‘감추는 천’이 아니라
‘정체성을 보여주는 천’이기도 하다.


히잡이라는 사물의 문화적 무게

히잡은 단순한 천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억압의 상징이었고, 때로는 자율성의 선언이었다.
사회적 시선, 종교적 해석, 여성의 입장에 따라
그 의미는 언제든 바뀌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작은 천 조각이
여성과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드러내는
가장 조용하고도 가장 뜨거운 상징이라는 점이다.

 

다름이 아니라 공존의 메세지